눈물로 푼 내 인생의 ‘장학퀴즈’, 평안북도지사,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 평안북도 벽동군 출신, 1949년 6세의 나이로 한국에 온 차인태 아나운서(아호 ‘벽동’)의 항암 치료기,

 

김윤덕 문화부장

참고 자료
blog.naver.com/donghlee1001 장학퀴즈의 명교사인 대만추 사과알 하나 독자들은 만추과일전에 펼쳐져 사과를 상상한다…blog.naver.com
출처 잉어 2018.9.5
항암치료 받는 차인태 아나운서의 고백
차인태씨는 대한민국 방송사가 낳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로 TV 브라운관에서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며 중저음의 맑은 음색, 그리고 빈틈없는 매무새로 대중의 신뢰를 한 몸에 얻은 방송인입니다.
그는 2009년 “B 세포 미만성 림프 종양”이라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니 정신만 차리라는 말을 듣고 청천벽력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하지만 왜 지금 내가 아니면 안 될까 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몰려 구순 노부모를 떠올리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항암치료를 아홉 번이나 하면서 투병생활을 했고 밤마다 울어야 했고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 중환자실에 들어가 2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삶의 자세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는 아침식사때마다 “맨손으로 38선을 넘어온 월남피난민이고…”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기도로 자신이 여기까지 왔다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신앙적으로 보면 내게 또 하나의 소명이 있어 이런 선물을 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나눔, 나눔, 공경 그런 말을 요즘 많이 생각한다.
인간은고난을겪었을때자신을돌아볼시간이필요하죠. 스스로에게 닥친 비참한 고통의 시간에 대처하는 삶의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추가) 차인태 아나운서는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태어났으며 바호는 벽동이다. 벽동(碧洞)이라는 이름의 아호도 출생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1965년 DBS 동아방송 전국대학방송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 1966년 7월 서울중앙방송(현재의 KBS 한국방송공사) 아나운서로 입사해 본 과정까지 마친 뒤 1967년 2월 서울중앙방송을 퇴사해 한 달 만인 1967년 3월 퇴역해 병역을 마친 뒤 1969년 2월 MBC 문화방송 정식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문화방송에서 고교생들의 퀴즈 프로그램인 장학퀴즈와 남북이산가족 상봉실황, MBC 뉴스데스크, 차인태의 아침살롱 등의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으며 각종 스포츠 아나운서로도 활동하며 문화방송의 대표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문화방송 편성이사를 지내다 1994년 제주MBC 사장을 지냈고 이후 문화방송 직위체제에서 전격 퇴임했으며 이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이사장, 경기대 다중영상매체학과 교수 등을 지냈다.
그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부모님과 함께 월남한 실향민으로 6세 때인 1949년에 일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평안북도 벽동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 경상북도 경주로 상경하였다. 2001년 자유민주연합 특임위원을 잠시 지냈으며 퇴임 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이북5도위원회의 명예직 중 하나인 평안북도도지사를 역임했고 그 재임 기간 중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0년 8월에는 명예도민으로 위촉된 바 있으며, 현재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현재 서울영락교회 장로로 교회에 참여하고 있다.
출처 : koinenote.tistory.com [코이네 설교 예화 노트]